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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홍도에 대하여

김홍도에 대하여

신지영

왜 김홍도를 선택했는가?

서민의 삶을 그린 조선의 화가, 바로 김홍도이다. 나는 예전부터 애국심이 강해서인지 우리나라 문화에 자부심을 많이 가져왔다. 1학년 수학발표에서 다른 애들이 뉴턴, 오일러..등 서양의 수학자들에 대해 소개할때도, 나는 우리나라의 수학자를 검색했다. 다른 애들이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좋아할 때 나는 장구의 넘치는 흥을 좋아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문화는 나에게야 말로 지켜야할 유산이자 선조들의 선물이었다. 그런 내게 중학교부터의 미술 수업은 약간의 과부하가 왔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는 아직도 인상주의가 뭔지, 사실주의가 뭔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서양의 미술을 타국 문화로서가 아니라 우세한 문화라는 듯이 받아들이는 그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길고 긴 이유들로‘김홍도’라는 책을 고르게 되었다. 김홍도가 민화를 그리기 위해 펜을 들며, 어떤 마음이었을 지 한번 생각해보았다.

서민들을 그린 그림

남녀노소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 같다. 숭의여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그려보자고 할 때, 단정히 차려입은 모습을 그리지,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치마 팽이같애’ 라고 말하는 맹구같은 현실의 모습은 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홍도의 풍속화는 아주 현실적이고 생생했다. 대표작인 ‘서당’을 살펴보면, 책을 펴고 나란히 앉아 몸을 흔들며 천자문을 외우는 이상적인 서당의 모습이 아니다. 맞아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 아이를 보며 킬킬거리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내가 저 시대 사람이어도 저런 모습이었겠구나’라는 생각 또는,‘현장에서 그린 건가’라는 의심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그림으로 우리에게 그 시대 모습의 생생함을 안겨주는, 그런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김홍도의 성품

중학교 2학년일 때, 내가 쓴 시를 음악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시에서 나의 마음이 드러난다고 하셨다. 이처럼 작가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그 작품에 작가의 심성이 투영된다는 건 교과서에 나올 법한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김홍도가 높은 귀족 층의 그림 대신 서민의 그림을 그린 것은 어떤 마음과 연결되는 것일까? 김홍도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심지어 큰 부자였던 ‘김한태’라는 사람도 김홍도의 큰 팬이었다. 만약 내가 유명한 화가이고, 부자의 지지를 받는 상황이라면, 나는 그것을 기회삼아 더 높은 자리를 탐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김홍도의 성품은 착하고 겸손했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은 ‘ 김홍도는 속에 품은 뜻이 맑다’고 표현했다. 이것은 ‘탐욕이 없고 청렴하다.’ 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겸손’과 ‘청렴’. 김홍도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키워드였다.

김홍도, 청렴으로 관직에 오르다.-

김홍도는 결국 영조와 정조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맡게 된다. 책에는 타고난 솜씨와 스승 강세황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쓰여있지만, 나는 김홍도의 성품 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위의 내 생각대로 오만하여 더 높은 자리를 탐닉했었다면, 어쩌면 영조와 정조의 어용을 그리는 직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많은 신경을 쓴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뛰어넘으려 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김홍도가 훌륭해보였다. 욕심이 없고 의도가 맑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보다 남을 높이고 남의 장점을 찾아 배운다는 것은 현대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미술도 주위 친구들을 보면 본인만의 겸손을 갖고 해나가는 것이 아닌 다른 아이들보다 우세하기 위해서 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홍도가 그린 신선

김홍도는 정조의 명으로 궁궐의 큰 벽에 신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실수가 만연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김홍도는 떨지 않았다. 요즈음 미술 시간에 사군자를 그리기 위한 선 연습을 하고 있는데, 연습인데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빗나갔다. 그런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니, 김홍도는 얼마나 붓을 쥐고 그림을 그렸을까, 궁궐 벽에 자신있게 그려나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실패에 절망하는 사람이었다. 시험 결과가 조금만 낮게 나와도 쉽게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음으로 그 책임을 회피했다. 그런데 김홍도의 그림들을 보니 그런 내가 조금이나마 반성을 하게 되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일부터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큰 일을 하게 되는 기회도 올 것이고, 내게도 김홍도처럼 궁궐 벽에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그 때까지 늘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점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느낀 점

김홍도가 우리나라 화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크게 자세히는 몰랐는데, 김홍도의 삶의 자세로써 이렇게 삶의 인과관계를 파악함으로 많은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첫째로 가난한 삶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자신이 성공한 일에 대해서도 늘 겸손함과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셋째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여 큰 일을 해내는 점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