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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운동 답사

광주 민주화 운동 답사
2016년 11월 05일 - 11월 6일

민주주의, 꺼지지 않는 우리 겨레의 불씨

각종 정치적인 이슈들이 터지며 혼란스러워지는 이 때, 우리는 11월 5,6일 이틀 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답사를 목적으로 전남도청, 전남대, 5.18 국립 묘지 등 광주 일대 지역을 다녀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1980년 5월 18일 신군부 세력에 의해 계엄령과 휴교령이 내려진 뒤 전남대 학생의 항의를 시작으로 광주시민까지 확대된 민주화 대규모 시위를 말한다. 이 운동의 의의는 시민이 하나가 되어 군부 독재에 저항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만 먹고 잘 살면 되지.’ 하는 개인주의적 욕심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임에도, 또한 그 시기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비교적 얼마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민주주의적 정신이 지켜질 수 있었을까? 버스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이러한 의문은 더욱더 심해졌다. 화려한 휴가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동생이 한 명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당연히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하다’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영화에서 ‘최후의 항전지 전남도청에 남아 싸우려는 가장들과 그들을 말리는 가족’의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도대체 왜, 어떻게 그들은 개인주의적 욕심과 안전을 날려버리고 민주주의적인 위험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전남도청과 금남로 주변에서 미션수행을 하면서, 전남대와 5.18 국립묘지를 둘러보면서, 그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금남로에서는 항쟁했던 시민군의 모습이 보였다.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참가하는 시민의 모습, 그리고 그 시민이 부상을 입자 통탄하며 하나같이 달려오는 다른 시민의 모습이 보였다. 전남도청과 상무관에서는 마지막 전투를 위해 참전하는 용감한 가장의 모습, 시신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시신을 닦는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주먹밥을 나누어 주는 부녀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전남대에는 민주적 가치관으로 항의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5.18 국립묘지에서는 수많은 시민군들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의 동생은 친구가 억울하게 죽자 그 화를 참지 못했고, 그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하셨던 분은 그렇게 총탄을 맞게 되자, 가족과 지인은 직접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우선시되었다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던진 질문을 우습게 만들었다. 개인주의적 욕심과 안전보다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말이다. 그 사랑하는 관계가 광주 시민들에게 서로 얽히고 얽혀 엄청난 시너지로 나오게 된 것이다.

현재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토요일 저녁 숙소 가까이에 있는 TV를 통해 서울 대규모 촛불집회 장면을 접하게 되었다. 아른아른거리는 수없이 많은 촛불들에 밀려오는 벅참으로 가슴이 뛰었다. 1980년 광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한겨레 의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쟁 사회에 파묻혀 서로를 돌볼 시간이 없을지라도 우리 깊은 마음 안에는 불씨가 타오른다는 것이었다.

한편, 전남도청과 상무관에서 내가 목격한 것이 있다. 바로 ‘전시 준비’이라고 쓰여진 종이. 처음에는 ‘1980년대 일이고, 벌써 30년이 넘게 흘렀는데 왜 아직도 전시 준비인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 때, 지나가는 행인 한 분이 자신을 그 때의 시민군이라고 소개하신 뒤, ‘직업적 업무로 전남도청 내부를 본 적이 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의 모든 흔적이 깨끗이 지워져있다’라고 하셨다. 상무관 역시 ‘출입불가’에 ‘전시 준비중’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또, 5.18 국립 묘지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헌혈한 후 집으로 돌아가시다가 돌아가신 분, 귀가 잘 안 들리시는데 계엄군이 명령 불복종한다고 폭행해서 돌아가신 분,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이런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나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생각으로까지 도달한 나는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아직도 독재같지 않은 독재는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 앞으로 몇 십년을 같이 살아갈 나의 이웃, 가족, 친구들과 그 후의 몇 십년을 더 살아갈 우리나라의 후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물려주어야 마땅한가. 물론 일개 국민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1개’ 였을 때이다. 나는 우리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처럼 우리 겨레의 사랑으로 엮어진 그 무수한 시너지를 함께 펼친다면, 감동의 대한민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 각자의 마음 속에는 작은 불씨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힘든 취업난과 대입난 속에서도 보이는 내 옆사람을 위한 작은 마음이 그것이다. 그 불씨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또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하나의 태양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