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글] 할머니, 나의 할머니

할머니, 나의 할머니

신지영

내겐 할머니가 계셨다. 누구보다 나를 기다리시던 그 분.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나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외롭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졸라 기어이 저지른지라 피부병과 백내장, 8살이란 조건은 눈등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되려 8살이면 어린 것이 아니냐며 무지하게 이야기했다.

당일, 부모님은 그 개를 보시더니 어디서 병든 개를 주워왔냐며 한숨을 내쉬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겐 입 하나, 일 하나 늘어났을 뿐이리라. 하지만 내 눈에 그 강아지, 아니 순이는 이유 모를 여유와 조신함을 갖고 있었다. 끝내, 순이와 나는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잠잘 수 있었다.

그 날부터, 순이와 나는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밥을 먹고, 늘 같이 움직였다.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와 집문을 열었다. 그 앞엔 늘 꼬리치는 순이가 있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순이는 늘 나를 행복하게 했다.

순이는 날 향해 짖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학교서 큰 아픔과 맞이했던 날, 순이에게 모든 것을 울면서 털어놓았다. 그러자 흠칫 놀라더니 갑작스레 짖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분노라도 하듯…… 그제야 난 깨달았다. 순이는 내 말에 늘 웃어줬을 뿐이라는 것을.

2월에 순이와 만나고 6개월이 흘러 8월이 되었다. 그새 우리학교는 여름방학을 맞이했고, 들뜬 나는 순이와 시골에 가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외할머니 댁 근처 바닷가에서 순이와 같이 뛰어다니며, 그 녀석의 발을 모래로 덮으며, 잊지 못할 너와 나의 추억을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우리는 출발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골은 어두웠다. 드문 드문 보이는 산과 달이 그럴싸한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순이는 피를 토했다. 외삼촌의 차를 급히 빌려 타고 시골에 하나 뿐인 동물병원을 찾아가니, 합병증이라고 하신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리고 그 안에 순이만 남았다. 난 순이를 살리고 싶었다. 그 날은 치료를 받게했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4일째 되는 날, 순이는 또 피를 토하고 대장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의사가 선택해야한다고 했다. 난 순이를 살리고 싶었다. 아니, 아니다. 나는 순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결국, 주사 두 개로 순이와 작별을 고했다. 그 녀석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그 날 저녁, 순이가 짖었던 날보다도 더 큰 울음을 쏟아부었다. 울면 울수록 그 녀석 생각이 났기에. 아빠께선 나가자고 하셨다. 나는 아빠와 반짝이는 서해안 앞에 섰다. 아빠께선, 다름아닌 할머니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시할머니께서는 늘 절에 물 떠다놓고 무엇인가를 기도하셨다고 한다.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언제나. 그런데 어느날, 유치원생이었던 사촌 언니와 함께 길을 건너던 중, 오토바이 뺑소니로 즉사하셨다고 한다. 그토록 나를 보고 싶어하셨는데, 한 번조차 안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순간, 그저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순이가, 나의 할머니 같아서. 순이가 내게 지녔던 것들이 너무 큰 것들이어서.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다. 내게 돌아오신 것이었다. 지난 6개월간, 15년간 못 다 한 정을 주시기 위해.

난, 아직도 순이를 기억한다. 가장 행복했던 그 때를 기억한다.